자료=AXINOVA R&D Institute(에이엑스이노바연구개발원, 원장 최득진 박사)
독일, 프랑스, 일본, 스웨덴,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고령화와 복지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복지세 또는 이에 준하는 목적세를 일찌감치 도입해왔다. 그들은 복지 확대와 재정 건전성이라는 이중 과제를 세제 개편으로 풀어내며 복지국가로의 길을 걸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일반 조세에 의존한 복지 확대로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사회복지세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다.
선진국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은 1995년 장기요양서비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간병보험료’를 도입했고, 프랑스는 소득 전반에 적용되는 ‘사회적 기여금’을 통해 광범위한 복지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부흥특별세’를 부과했으며, 스웨덴과 영국은 각각 일반세와 국민보험료를 활용해 지속적인 복지 투자를 가능케 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보여주는 공통점은, 복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별도의 재정 확보 장치를 마련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그에 비해 한국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제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기초생활보장, 아동수당, 노인복지 확대 등으로 인해 국가 재정의 부담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재원이 일반회계에 집중되다 보니, 복지 지출은 늘어나도 과세 기반은 따라가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정치적 부담까지 겹치며 실질적인 증세 논의는 번번이 좌초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회복지세는 단순히 재정 수단이 아니라, 사회통합의 제도적 틀로서 의미를 가진다. ‘부자 증세’라는 이념 대립을 벗어나, 모든 국민이 일정한 비율로 기여하고, 그 혜택 또한 누구에게나 돌아간다는 보편적 증세 구조는 조세 정의를 실현하고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복지의 보편성과 조세의 보편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내가 낸 세금이 나와 우리 사회를 위해 쓰인다’는 신뢰가 형성된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복지를 늘리면서 세금은 그대로 두겠다는 발상은 지속 불가능하다. 특히 한국처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사회에서는, 의료·요양·연금 등의 지출 증가가 예고된 만큼 제도적 대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사회복지세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다. 제대로 설계된 사회복지세는 특정 계층을 표적으로 삼지 않으며, 납세자의 납득을 전제로 한다. 정치권은 사회적 갈등을 피하려는 단기적 회피가 아니라, 장기적 사회안정과 통합을 위한 용기를 보여야 할 때다.
사회복지세는 공동체가 연대의 원리로 작동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 도입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